해마다 100만개 이상의 사업체가 태어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연간 80만개에 달하는 사업체가 문을 닫는다. 창업활성화 정책은 자주 들어봤어도, 폐업하는 이들 80만개 기업의 재기를 돕고 폐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 80만개 기업은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사)한국폐업지원희망정책협회(이하 폐업지원협회) 고경수 회장은 “통계청에 따르면, 2012~2014년까지 3년간 평균 폐업건수가 82만2700건이다. 또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도 한 해에만 폐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30조4000억원에 이른다”며 “창업지원법은 있어도 폐업지원법은 없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적으로 폐업을 숨기려고만 하다보니, 폐업에서 재기 그리고 재창업으로 이어지는 건전한 생태계가 구축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직거래 ‘폐업119’…폐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폐업할 때 서둘러 정리한다. 자책감과 실패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대부분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손실을 그대로 떠안는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폐업절차를 밟을 수 있다면, 개인의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고 폐업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지난해 8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폐업지원협회는 이를 위해 폐업과정을 지원한다. 폐업손실을 최대한 줄여 ‘폐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해 재도약이 가능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우선 폐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인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자산에는 잡혀 있으나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불용자산이 존재한다. 일례로 창고에 먼지가 쌓여있는 노트북, 복합기, PC 등은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처분할 기회를 놓쳐 오히려 돈을 주고 정리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폐업지원협회는 ‘폐업119’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고, 직거래 비율을 높여 손실을 최대한 줄여주고 있다. 예를들어 빵집을 폐업할 때 폐업119에 부동산과 설비 등을 등록하면, 빵집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해당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업자에 따라 차이가 큰 철거비용도 어플을 통해 업체가 가격을 제시하면, 원하는 업체를 선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폐업비용의 30%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게 고 회장의 설명이다.
폐업지원협회는 폐업지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폐업지원협회의 전문가들이 나서 아이템을 바꿀지, 아니면 운영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최종적으로 폐업을 할지 등을 컨설팅한다. 고 회장은 “전문인력이 해당사업장을 찾아 사업컨설팅을 해주는 것이 협회의 주 업무”라고 소개한다. “직접 방문이 가능한 곳은 직접 방문을 하고, 거리가 멀면 전화상담을 해준다. 또 폐업과정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정부 프로그램과도 연계해주고, 폐업과 관련한 세금문제 등 행정적 처리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업지원협회는 지난 5년 동안 3000여개 기업을 컨설팅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폐업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폐업119’ 뿐만 아니라, ‘창업119’도 준비중이다. 폐업과정에서 나온 각종 설비와 부동산을 창업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창업비용도 20~30%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 회장은 “창업을 준비하면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폐업119와 창업119를 연계함으로써 비용부담을 줄여 창업하고, 혹 사업이 안되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해 재기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형의 자산뿐만 아니라, 특허나 레시피와 같은 무형의 자산가치도 공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폐업을 숨기려는 문화가 손실 키워…공공이 나서야” 그는 폐업지원협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구조적으로 정책적으로 제대로 된 실효성 있는 정부 지원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창업만큼 폐업도 중요한데, 창업지원법은 있지만 폐업지원법은 없다. 폐업할 때 단계별로 출구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지, 관련 기관은 어떤 대안을 줄 것인지 등 디테일하게 구성해야 한다”며 “현재 협회 인력만으로 연간 80만건에 이르는 폐업 사례를 커버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고 회장은 “우리나라는 ‘실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 실패를 하면 마치 주홍글씨처럼 낙인을 찍어 불이익도 많이 받는다. 소중한 실패경험도 나누지 못한다. 연간 80만명의 폐업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피하고 외면만 할 수는 없다. 폐업할 때 손실부터 줄이는 것이 곧 재기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며 공공이 나서줄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