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늘 번쩍였던 한국의 밤…'심야 상권'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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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짜 2019.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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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동에서 10년 넘게 영업하던 ‘오페라&’ 노래방은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오피스 밀집 지역에 위치해 평일 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사가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했다. 이곳을 운영하던 류모 사장은 “올 초 ‘미투’ 운동이 번지더니,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면서 매출이 예전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밤을 밝히던 술집ㆍ노래방ㆍ편의점 등 이른바 ‘심야 상권’이 사그라들고 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 부회장(단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2차ㆍ3차로 이어지던 회식과 ‘밤샘 놀이’ 문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업자 입장에선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이 늘어난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점업의 생산지수(불변지수 기준)는 94.5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 영향을 제외하고 평가한 유흥주점ㆍ생맥주 전문점ㆍ소주방 등의 매출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의미다. 2008년 1분기(133.8)와 비교해선 39.3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커피전문점 같은 ‘비알코올 음료점업’이 86.5에서 129.4로 42.9포인트나 오른 점과 대비된다.   
  
일반 음식점도 유탄을 맞는 분위기다. 지난 6일 밤 11시가 넘자 광화문역 인근의 고깃집ㆍ치킨집ㆍ횟집 등  주요 식당은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A고깃집 직원은 “2~3년 전에는 새벽 1시까지 영업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없어 밤 11시면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무료 폐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폐업119’ 고경수 대표는 “폐업 상담을 받으러 오는 심야 상권 업체들이 지난해보다 20~30% 정도 늘었다”며 “B급 상권이 아닌 직장인ㆍ유동인구가 많은 A급 상권에서 폐업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도 이제는 옛말이다. ‘이마트24 편의점’의 신규 가맹점 중 24시간 운영점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19%에서 올해 상반기 9.7%로 떨어졌다. 서울시의 ‘편의점주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심야영업을 하는 편의점주 62%는 앞으로 심야영업을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버거킹ㆍ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점도 24시간 영업을 중단하는 점포가 늘고 있다. 수많은 밤샘 게임족을 양산하던 PC방 수는 2001년 2만3000여곳에서 현재 1만곳 남짓으로 반토막이 났다. 여관 등 숙박업의 1분기 생산지수는 94.5로 10년래 최저치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일과 개인 생활이 균형을 이루자는 이른바 ‘워라밸’ 바람이 불면서 일찍 퇴근해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업들도 청탁금지법과 미투 운동 등으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퇴근 후 모임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다.  여기에 매출이 줄고 인건비 부담이 커져 수지를 맞추기 힘든 점포는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줄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심야 상권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영업자 수를 가진 한국 경제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심야상권 위축으로 관련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문을 닫고, 해당 업종의 취업자 수가 줄면서 경기 및 실업률 전반에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야간 상권은 대부분 단순 서비스업인데, 결국 단기 아르바이트나 임시직ㆍ일용직 등 저소득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상가 임차수요나 임대료 등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연착륙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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